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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ation

비전과 꿈이란

by Daniel_Go 2011. 9. 17.
교회 어른이 한 청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년에게 비전이 뭐냐고 물어본다.
청년은 우물쭈물댄다.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분은 큰 비전을 품어야 한다고 충고하신다. 
세계를 품을수 있는 비전을 달라고 기도해주신다.
사랑과 관심과 걱정으로 가득하지만 청년은 위축이 된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배워왔다.
세상에 영향력을 줄수 있는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인생을 채워야 한다고 들었다.
나는 그래서 공부도 잘해야 하고, 매사에 우수해야만 한다.
찌질하고 어리버리한 모습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 삶이 아닌 것이다.
만약 내 삶에 엑티비티한 모습이 없고 초라한 패배자의 모습이 있다면
내 신앙을 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이런 모습으로 나를 놔두시지 않기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 비전도 세상을 변화시킬만큼 거대해야만 했다.
내 신앙이 올바르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뭔가 거창한 비전이 필요했다.
교회 어른들이 걱정하지 않게 어린아이가 풍선을 불어대듯이 내 비전은 그렇게 부풀려져 갔다.
내가 그리 원하지 않아도 내 비전은 세상을 변화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얼마전 오랫만에 대학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그 친구는 대학때 믿지 않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다.
여러가지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다 서로의 비전을 나누게 되었다.
나는 자신있고 당당하게 나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다시 또 내 비전은 세상을 변화 시키고 있었다. 자랑스런 내 비전이 식당을 가득 메우는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친구가 비전을 나누었다.
따뜻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나에게 그의 비전을 이야기해주었다.
"난 먼 훗날에 내 아이들이 언제나 기도하는 아버지였다고 나를 기억해주는 삶이었으면 좋겠어"
라고 비전을 나누었다.
'그게 무슨 비전이냐' 라고 이야기하기엔 그 비전은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던 내 비전이 그렇게 초라하게 보일수가 없었다.
난 비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랫동안 내가 착각했던 것 중 하나는 비전이 꼭 직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전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뭐가 뭐가 되어서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할꺼야 라는 구체적인 무언가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전이나 꿈은 직업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야할 방향인 것이다. 어떻게 살꺼냐에 대한 물음이었던 것이다.
요셉의 비전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아니었다.
그는 정직하게 살길 원했고, 형제들을 미워하지 않기를 원했고, 자기를 궁지에 몬 사람들을 용서하기 원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던 비전의 사람이었다.
이런 비전을 가지고 있는 총리인 것이지 그의 비전이 총리는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꿈의 사람 요셉의 이 비전을 다 생략하고 결론으로 총리대신이란 
반짝이는 직함만 타이틀로 걸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총리대신과 같이 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 중요한 삶의 여정을 위한 준비는 다 생략하고 
반짝거리는 타이틀만 늘어놓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에게 비전에 대해 물어보면 자신있고 당당하게 대답할 짧고 강력한 문장을 준비했다.
그리고 정말로 내 안에 이루고 싶은 간절함이 생기고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 내게 총리대신을 허락하지 않으셔도 내 삶의 열정을 다해 이루고 싶은 비전이 생긴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닮고 싶어요" 이다.